고경호
....메를로 퐁티가 말하는 '현실적 장'은 육체에서 이탈된 마음 앞에 펼쳐진 하나의 광경이 아니라, 바로 시각을 지니는 육화된 주체가 처해있는 모호한 영역이다. 바로 그러한 영역에서 우리의 지각 경험은 재발견될 수 있다. 고경호의 작품 역시 존재의 의식에로의 나타남을 탐구한다. 작가의 원초적 경험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들은 내부이기도 하고 외부이기도 한 애매한 작품공간을 창출한다. 그에게 '세계를 보는 창'은 너무나도 모호하다....
문주
.....오직 내가 가장 철저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시간과 싸우는 일이다. 결론을 유보하는 과정, 그 속에 떠도는 언어를 갖지 않는 결론, 그렇게 남겨진 결론들은 언제나 진행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진행의 과정들에 묻어 있을 뿐이고, 나는 시간 속에 남겨져 있는 그 흔적을 추적한다.
나는 분명히 이런 순간을 즐긴다. 그러나 이런 결정되지 않는 요소들은 항상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렇다면, 왜 그 유보의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는가? 그것은 "지연의 미학"이다. 문명의 안테나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하기 위한, 그리고 문명의 사선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 무엇들과 대면하기 위한, 몇 개의 논리와 감성이 동시에 증폭되며 심화되는 논리의 비약조차 수용하기 위한 지연의 전략이다. 내게 있어 작업은 시간과 싸우는 일, 최후의 최후까지 발설하지 않고 결론을 지연시키는 일이다......
김종구
김종구의 작업은 거대한 쇳덩어리를 깎아내는 노동잡약적인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쇳덩어리를 쇳가루로 변형시킴으로써 쇠가 갖고 있던 그육중함과 공격성을 제거한다.
쇳가루 서예 '쇳가루 산수화'라 불리는 작품은 수성접착제를 흠뻑 적신 광목 위에 작가가 평소에 느껴오는 인간사의 슬픈 내용들을 감성적 시어로 여백의 조화와 쇳가루의 흘러내림, 시간을 통해 쇳가루가 산화 되어지는 과정 등, 時, 書의 동양적, 정신성을 의미하는 탈 물질화의 단계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쇠의 변화는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작가의 반성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고경호, 흰 코뿔소의 방_400x115x168cm_Mixed media_1993년작 2012년 재조립 복원
문 주, 끝없는 수평_가변설치_Mixed media_2012
김종구, 쇳가루 산수화_2020x235cm_쇳가루, 광목, 나무틀